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독일 (문단 편집) === 중세 === * [[서로마 제국|서로마]] 멸망 후 부분에서 큰 물고기(프랑크)가 작은 물고기들을(부르군트,동고트,반달 등)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다. [[동고트 왕국|동고트]]와 [[반달 왕국|반달]]은 '''이미 [[동로마 제국|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니까 반달과 동고트는 프랑크 왕국이 팽창해지기 전에 이미 멸망하고 없어졌다는 것. 또한 반달은 애초에 북아프리카에 세워진 나라이므로 프랑크 왕국에게 멸망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프랑크와 반달 사이에는 서고트가 있다. *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교황을 겸했다고 나오며, 아예 성직자 복장을 입고 주교관에 [[월계관]]을 겹쳐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 장면부터가 오류가 있다. 동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는 배경설명에 이 장면이 나오는데, 엄연히 교황이 존재한다고 해놓고 황제가 교황을 겸한다는게 말이 안된다. 후에 서방과 동방 교회가 분리된 시점 이후라면 모를까, 이 시기는 엄연히 분리 전으로 오로지 하나의 교회만이 있는 시기였다.] 실제로는 황제는 세속군주로서 교회의 권위보다 우위를 인정받기는 했으나, 교회 내에서는 어디까지나 평신도였지, 절대 교회의 수장을 겸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 널리 퍼져 교과서에서조차 황제가 교황을 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 * 교황에겐 한 나라의 왕도 대들수 없다? 실제로는 초기의 경우, 정 반대로 교황이 정확하게는 황제에게 대들 수 없었다. 예시에서 '도이칠란트 왕이 로마 교황에게 대들었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데 [[독일왕]]은 거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태자 사이의 지위였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독일왕이 따로 있다면 독일왕이 황제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면 황제가 교황에게 군대를 보내어 폐위시키면 그만, 그나마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교황에게 인정을 못 받은 상태라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폐위를 시킬 수 있다면 장땡 이러한 문구가 어느정도 먹히는 것은 [[보름스 협약]] 이후로 이 사건을 전후하여 교황권이 황제권보다 강해진다. 이러한 가정은 실제에 어느정도 근거한 것으로 이 파트 앞에서 나왔던 오토 대제와 [[카노사의 굴욕]] 당시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의 아버지, 하인리히 3세의 경우 재위중에 몇번이고 교황을 갈아치웠다. * [[신성 로마 제국]]에 관한 서술 오류가 많이 있다. 항목 참조. 딴건 몰라도 “무늬만 제국이지 실상은 별볼일 없는 소국들을 대충 묶어놓은 허울좋은 나라”라는 서술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성립 시점의 신성 로마 제국은 이처럼 껍데기뿐만 제국이 아닌, 오히려 당시 한창 잘나가던 [[독일 왕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가장 강한 국력을 자랑했다.[* 필리프 2세 이전에만 해도 프랑스조차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 아래 취급 받았다.] 만화 내에서도 당시 독일 왕국의 강력함을 잘만 설명해 놓고 이런 모순된 서술을 하니 독자 입장에서는 어리둥절...[* 카노사의 굴욕 시기의 황제, 하인리히 4세도 실은 상당한 권력을 누렸고(카노사의 굴욕도 황제권의 패배가 아닌 그냥 일시적으로 다급해져서 일어난 일에 가깝다. 진짜 황제권의 패배는 [[보름스 협약]]이다.) 그 아버지의 경우에는 자기 재위시절에 교황을 세번이나 갈아치우기도 했다.] 30년 전쟁을 기점으로 시시한 나라로 떨어지기 시작하긴 하는데 그것도 오토 대제의 대관으로부터 700년 뒤의 이야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